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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만지다/상식

망종과 현충일

 

  조선을 식량공급기지로 삼기 위해 일본은 1920년 산미증식계획이라는 수탈 정책을 시행했다.

  쌀 품종과 농지를 개량하고 서양에서 들여 온 화학비료를 사용해 쌀 수확량을 900만석까지 증산, 그 중 460만석을 가져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증산 효과는 10%에 훨씬 못미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수탈해 간 쌀은 매년 계획량을 초과했다. 13년간 계속된 이 정책으로 인해 농민들은 해마다 혹독한 춘궁기(春窮期)를 겪어야만 했다. 이때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농민들이 손꼽아 기다린 것이 망종. 보리 수확으로 허기진 배를 그나마 달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보릿고개의 고난사다.

 

  망종은 24절기 중 소만(小滿·5월 21일)과 하지(夏至·6월 21일) 사이에 맞는 아홉 번째 절기다. 햇볕이 풍부해 만물이 생장하는 시점이 소만이라면 망종은 보리 수확을 마치고 모내기를 시작하는 시기다. 가시랭이 망(芒)과 씨 종(種) 자를 쓰는 것만 봐서도 망종은 이삭에 까끄라기(수염)가 돋는 보리 및 벼 농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수확의 기쁨과 씨를 뿌리는 희망이 상존하는 절기니 농민들에게는 가장 바쁘고 즐거운 때라 하겠다.

 

  지금은 비닐 모판에서 모를 길러 이앙을 하다보니 망종보다 보름 정도 빨리 모내기를 하지만, 그 전에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망종 전에 보리 베기를 끝내야 모 심기에 차질을 빚지 않았다. 오죽하면 ‘망종엔 발등에 오줌 싼다’고 했을까. 망종에는 농사일 외에도 할 일이 많다. 겨우내 벽장 속에 처박혀 있던 이불이나 옷가지를 내다 널어 햇볕에 말려 소독해야 하고, 그동안 쓰지 않던 각종 농기구를 손봐야 한다. 농경사회에서 우리 조상들은 이처럼 절기를 통해 삶의 지혜를 터득해 왔다.

 

  망종은 대체로 6월 5일이나 때로 6일이 되는 경우도 있다. 예부터 청명(淸明)과 한식(寒食)에는 손이 없다고 해 사초와 성묘를 하고 망종에는 제사를 지냈다. 동국통감 고려기에 현종 15년 망종 날 몽고군과의 전쟁에서 사망한 군사들을 위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보인다. 1956년 6·25 전사자를 기리기 위한 현충일을 제정할 당시도 옛 풍습에 따라 망종에 호국영령들의 합동위령제를 올리기로 했다. 그때 망종이 6월 6일이었다. 현충일이 6일로 정해진 이유다